그해 여름, 서툴렀지만 기억에 남는 메인주 여행

우리들의 서툴고도 찬란했던 메인주 4박 5일 캠핑 일기

시간이 참 빠르게 흐릅니다. 품 안의 자식이라더니, 어느새 훌쩍 자라버린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문득문득 마음 한구석이 몽글해지며 지나간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그중에서도 우리 가족의 기억 속에 깊게 남아있는 페이지를 하나 펼쳐보라면, 단연 아들이 중학생이던 그해 여름에 떠났던 메인주(Maine)로의 4박 5일 여행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정착해 정신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보니, 문득 아들이 더 크기전에 캠핑 경험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자연의 품속에서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드는 텐트에서의 경험, 평소 우리 가족에겐 익숙하지 않았던 ‘캠핑’이라는 거창한 도전을 결심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남편과 나, 그리고 중학생 아들. 이렇게 셋이서 단출하게 차에 짐을 싣고 대장정의 길을 나섰습니다.

상상 속의 대학 교정을 거쳐, 어설픈 초보 캠퍼의 첫걸음

메인주까지는 한 번에 가기엔 꽤 먼 거리였기에, 우리는 가는 길에 뉴욕주를 거쳐 커네티컷주의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 근처에서 하루 머물기로 했습니다. 이튿날 아침, 예일대 캠퍼스를 잠깐 들러, 고풍스럽고 웅장한 고딕 양식의 건물들을 보며 아들의 눈에 호기심이 가득 차오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나중에 이런 멋진 곳에서 공부하면 어떨까?” 하는 남편의 넌지시 건넨 한마디에 쑥스러운 듯 웃던 아들의 표정이 아직도 선합니다. 그렇게 지적인 자극을 가득 안고,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할 진짜 목적지인 메인주를 향해 다시 차를 몰았습니다.

메인주에 도착해 마주한 대자연은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다웠습니다. 하지만 감동도 잠시, 우리 부부에게는 생애 첫 ‘캠핑’이라는 거대한 숙제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어설펐습니다. 설명서를 몇 번이나 뒤적거리며 텐트 폴대를 낑낑대며 맞추는 남편, 혹시나 물건을 빠뜨렸을까 봐 안절부절못하는 나의 모습은 영락없는 초보 캠퍼였습니다. 텐트 하나 치는 데도 땀을 뻘뻘 흘리며 한참이 걸렸지만, 그 과정조차도 가족이 함께 머리를 맞대니 하나의 즐거운 놀이가 되었습니다.

캠핑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밤이 찾아왔을 때였습니다. 어둠이 짙어지자 텐트 옆에 조그맣게 장작을 쌓아 올리고 생애 첫 캠프파이어를 시작했습니다. 타닥타닥 장작이 타들어 가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르는 붉은 불꽃이 우리 세 사람의 얼굴을 따스하게 비추었습니다. 이날을 위해 준비해 온 마시멜로를 긴 꼬치에 꽂아 불 위에 살살 돌려가며 녹여 먹기 시작했습니다. 겉은 노릇노릇하고 바삭하게, 속은 부드럽게 녹아내린 마시멜로를 한 입 베어 문 아들의 눈이 동그래졌습니다. 달콤한 마시멜로가 입안 가득 퍼지듯, 행복감도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가득 퍼져나갔습니다. 미국에 와서, 그리고 우리 아들이 중학생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했던 이 특별한 경험을 마침내 선물해 주었다는 뿌듯함에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어설픈 엄마 아빠의 도전이었지만, 불꽃을 바라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그 밤은 세상 그 어떤 고급 호텔에서의 하룻밤보다 아늑하고 소중했습니다.

산 정상에서 맞이한 황금빛 해돋이와 바다의 품

다음 날 새벽에는 이번 여행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이자, 메인주가 주는 아주 특별한 선물을 받기 위해 움직였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유명한 아카디아 국립공원(Acadia National Park)의 정상, 캐딜락 마운틴(Cadillac Mountain)에 오르기 위해 새벽공기를 가르며 일어났습니다.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올라 정상에 서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차가운 새벽바람이 우리를 맞이했습니다.

얼마 후, 저 멀리 짙은 푸른색의 수평선 너머로 거대한 붉은 태양이 천천히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 순간 산 아래 펼쳐진 섬들과 온 바다가 순식간에 황금빛과 분홍빛으로 물드는 장관이 펼쳐졌습니다. 쌀쌀한 새벽바람에 서로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바라보던 그 경이로운 해돋이는, 사춘기를 지나며 조금씩 말수가 적어지던 중학생 아들의 마음도 활짝 열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자연이 주는 압도적인 감동 앞에 우리 세 사람은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붉게 물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산을 내려온 우리는 랍스터가 유명한 메인주에 왔으니 먹어봐야지 하면서 캠핑장 관리인이 추천해준 조그마한 로컬 맛집을 찾아가 야외 벤치에 앉았다. 너무 기대가 컸었나, 그냥 경험했다였다. 우리가족들이 랍스터를 즐겨 먹는편도 아니고 번거로운걸 싫어하기도 했다. 차라리 활기찬 바 하버(Bar Harbor) 시내로 나가서는 메인주 여행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명물, 랍스터 샌드위치(Lobster Roll)가 더 맛있게 기분좋게 먹었습니다.. 고소하게 구워진 빵 사이에 터질 듯이 꽉 찬 싱싱하고 탱글탱글한 랍스터 살을 한 입 베어 무니, 입안 가득 바다의 풍미가 시원하게 퍼졌습니다. 아들도 입가에 소스를 잔뜩 묻혀가며 정신없이 맛나게 먹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우리 부부의 배가 가득 차는 듯했습니다.

등대 유람선을 타고, 글라이드(Gliding)도 타고

낮에 찾아간 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수많은 작은 섬들이 메인주를 한 눈에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이어 바로 옆에 위치한 샌드 비치(Sand Beach)로 향했습니다. 차가운 대서양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거닐며, 소박하지만 깊은 여유를 만끽했습니다. 아들은 파도를 피해 달아나며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웃어 보였고, 그 웃음소리는 파도 소리와 섞여 우리의 마음을 따뜻하게 치유해 주었습니다.

메인주의 상징과도 같은 멋진 해안 풍경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등대 유람선(Nature Cruise)에 몸을 실었습니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고, 멀리 드문 드문 보이는 큰 별장들이 바닷가를 따라서 멋있게 펼쳐집니다. “야! 저런 곳에 별장이 있어 쉬러 올 수 있다면, 정말 멋지겠다” 하면서 부럽기도 했지요. 따라오는 갈매기들에게 먹이도 주고, 배에서 내린 뒤에는 푸른 바다 위에 그림처럼 서 있는 하얀 등대를 바라보며, 바윗돌을 밟으며,우리 세 사람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습니다. 에그 록 등대 ( Egg Rock Lighthouse)를 바라보며. 마침 뉘엿뉘엿 지는 붉은 석양이 하얀 등대와 절벽을 물들일 때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수채화 같았고, 새벽의 일출과는 또 다른 깊은 여운을 선사했습니다.

메인주(Maine) 여행 중 무동력 글라이드를 타고 해안선과 국립공원을 감상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경험입니다. 엔진 소리 없이 바람을 타며 독수리처럼 날아오르는 글라이드 탑승은 메인주의 아름다운 자연을 가장 완벽하게 감상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우리 아들에게 꼭 경험해 주고 싶다며 남편과 아들 둘이 탔는데, 마음씨 좋고 실력 좋은 기장이 남편의 허락하에, 멋진 비행 실력으로 오르락 내리락 스릴 만점의 곡예를 태워 주었답니다. 덕분에 우리 아들 잘 타고 내려와서 토했답니다. 잊지못 할 추억이 되었지요.

영원히 마음속에 타오를 모닥불을 안고

4박 5일이라는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캠핑장으로 돌아와 맞이한 마지막 밤, 첫날보다는 제법 능숙해진 솜씨로 텐트를 정돈하고 불을 피웠습니다. 처음엔 모든 것이 어설프고 두려웠던 캠핑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자연과 동화된 듯한 편안함이 가득했습니다.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그간의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마지막 날 아침, 정든 텐트를 걷어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백미러로 뒷좌석을 보니, 어느새 피곤했는지 깰 줄 모르고 깊은 잠에 빠진 아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그 얼굴을 보며 남편과 저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습니다.

비록 텐트를 칠 때는 어설펐고 모든 것이 완벽하진 않았지만, 아들에게 ‘처음’이라는 값진 경험과 평생 꺼내볼 수 있는 따뜻한 추억의 자산을 만들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완벽한 여행이었습니다. 지금도 가끔 지치고 힘든 날이면, 우리 가족은 그해 여름 캐딜락 마운틴 정상에서 보았던 황금빛 일출과 타닥이던 캠프파이어, 그리고 입안 가득 달콤했던 마시멜로를 떠올립니다.. 아이는 자라 부모의 품을 떠나겠지만, 우리가 함께 만든 이 기억들은 아들의 마음속에 영원한 이정표로 남아 거친 세상 속에서도 따뜻한 힘이 되어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